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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즐거운 인생

차량과 캠핑 여행의 즐거움, 미서부 여행( 미 원주민 삶 엿보기)

by Yumee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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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의 묘미 차량과 캠핑 여행

미국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땅이 큰 나라이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게 보편화 돼있고, 에어 버스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양의 이동이 있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 비행기를 이용하면 볼 수 있는 재미거리를 노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젊은 층에서 이런걸 알고 로드 트립(Road Trip) 즉 우리식 배낭여행을 즐기는 층이 정말 많을 정도이다. 차량과 캠핑을 위주로 여행을 하며 구석구석을 보는 것이 미국 땅을 여행하는 찐 매력 아닌가 싶다.

 

오늘은 저번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선셋 크레이터를 지나 옛 인디언들이 살던 역사적 장소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우팟키 국립 기념관( Wopatki National Monument)

우팟키 국립 기념관( Wupatki National Monument)

우팟키 국립 기념관은 수십 개의 고대 푸에블로 마을을 보존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침묵이 지배하고 있지만 한때 이곳은 번화한 무역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북부 시나과(Nothern Sinagua), 코호니나(Cohonina), 카옌타(Kayenta), 호호캄(Hohokam) 고고학 문화 그룹의 사람들은 척박해 보이는 이 언덕과 물지대에 옥수수, 콩, 호박, 목화를 심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훍만 보고 바람만 듣는 곳에서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은 살면서 자녀를 키우며 번영을 누렸다. 우팟키는 보이는 것만큼 조용하지 않다. 벽은 말을 할 수 있고, 오랫동안 귀를 기울이면 벽은 많은 교훈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와 문화

우팟키 국립 기념관은 1924년 12월 9일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이 성채와 우팟키 푸에블로를 보존하기 위해 설립했다. 그 이후로 기념물 경계가 여러 차례 조정 되었으며, 현재 총 35,422 에이커에 부에불로 및 기타 고고학 자원이 추가로 포함되어 있다.

우팟키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문화적 교차로를 대표한다. 초기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그 사람들 자신의 전통적인 역사와 남아 있는 구조물과 유물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해석을 포함한 다양한 관점에서 비롯된다. 

 

하이킹

우팟키 푸에블로 트레일: 우팟키 방문자 센터 바로 뒤에 위치한다. 한때 지역 무역 중심지였던 이 푸에블로는 방 104개로 볼 코트와 독특한 지질학적 분수공을 갖추고 있다.

거리: 왕복 0.8 킬로미터터

시간: 30분

난이도: 쉽고 경치 좋은 전망대 접근가능

 

코키 푸에블로 트레일: 사암 노두 위에 건설된 푸에블로.   

거리: 왕복 0.3 킬로미터   

시간: 15분

난이도: 처음 0.2 킬로미터는 쉬운 트레일을 통해 부에블로 기슭까지 접근 가능

 

날라키후 및 시타델 푸에블로: 날라키후를 지나 시타델 푸에블로까지 언덕을 올라가 주변 풍경의 360도 전망을 감상하자.

거리: 왕복 0.3 킬로미터

시간 :15분

난이도: 쉬움

 

오픈 시간과 날씨

* 비지터 센터: 9시부터 오후 4:30분

* 기념물은 일몰 시간부터 일출 시간까지 관람할 수 있다.

* 날씨: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기상 조건에 대비하는 게 좋을듯하다. 연중 언제든지 강풍이 불고 여름 기온이 38도 이상이고, 7월~9월에는 오후에 뇌우가 내릴 수 있으며 겨울과 초봄에는 가끔 눈이 내릴 수도 있다. 우팟키 날씨는 연중 언제든지 빠르게 변할 수 있으므로 여러 겹의 올을 입는 걸 추천한다.

우팟키에 살던 사람들의 물물 교환 모습

방문 소감

천 년 전의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집을 짓고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가족들이 모여 사는 모습을 그들의 주거지에서 엿볼 수 있었다.  마치 우리의 맷돌 같은 돌에 곡식을 갈아 음식을 만들어 먹곤 했다 한다.

이곳은 내가 여태 가 봤던 어느 곳보다 많이 발달되어 있는 푸에블로였다. 물물 교환까지 하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그림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평화롭던 그곳에 재앙 같은 화산 폭발로 모든 생물체가 사라지고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닌 곳으로 변한 것이다.자연의 무서운 힘을 보여 주고 있는 듯 느껴졌다. 천년이 넘어서야 새 생명들이 자라고 살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과학의 발달이 없던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상상해 보기로는 아마도 신이 노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연의 섭리가 뭐든 너무 포화 상태일 때는 개체수를 맞추기 위해 자연재해가 일어난다고 들었다. 자연이 우리의 모든 것들을 조율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대 자연 앞에 숙연함을 느끼고 돌아온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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